나의 기쁨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잠시 여러분을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닙니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고 여러분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분에게로 가려고 하였고, 특히 나 바울은 한두 번 가려고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우리를 방해하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오실 때에, 그분 앞에서, 우리의 희망이나 기쁨이나 자랑할 면류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야말로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2.17-20 새번역
우리 가족이 고향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이 할머니하면서 들어서기 무섭게 버선발로 뛰어나오시던 큰어머니께서 계셨습니다. 얼굴로는 떠나있으나 마음에 늘 함께 있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고향집에서 하루 이틀 묵고 나서 돌아가는 길에, 배를 타고 나오면 그 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니 그러고도 더 긴 시간을 바닷가 담장에 기대서서 배웅하시던 큰아버지께서 계셨습니다. 얼굴로는 떠나있으나 마음에 더 담아두시려고 하지 않으셨다면 또한 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요.
베트남 사람들은, ‘깜은’(Cam on 感恩 감사합니다)이라고 하면, 반드시 ‘콩커지’(Khong co chi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 발음이 그 뜻에 관계없이 무척 정겹게 느껴지더군요.
우리말 ‘천만에요’는 잘 쓰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천만(千萬)이 엄청난 숫자로 여겨지던 시기에 생겨난 말일지도 모르지만, 요즘 천만이 그렇게 과장된 숫자도, 과분한 수도 아니기 때문일까요?
영어를 배울 때, ‘천만에요’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영어 관용어를 배웠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감사하다고만 하면, 상황에 관계없이 영어로 외워두었던 관용어 중에 생각나는 대로 아무것이나 하나를 말했습니다. 외워둔 것이므로.
어느 중국 고객과 대화를 할 때, 영어교사를 하던 분이 통역을 하였는데, 내가 감사하다고 하면 꼭 ‘My pleasure!’라고 통역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내가 감사한 일이 그 분의 기쁨이라고 하는 그 표현이 다시 나의 기쁨이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